“계약서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그냥 서명했어요.” 건축 설계를 의뢰해 본 건축주 분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설계 계약서는 분량이 많고 전문 용어가 섞여 있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핵심 항목을 놓치면 공사 중간이나 이후에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나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건축 설계 계약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항목을 정리했습니다.
업무 범위: 설계·인허가·감리가 한 계약에 묶여 있나요?
건축사사무소가 수행하는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설계(도면 작성), 인허가 대행(건축허가 신청 및 행정 절차 진행), 감리(시공 현장 확인 및 건축주 대리). 이 세 가지가 한 계약서에 포함된 경우도 있고, 감리만 별도 계약으로 분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계약서에서 확인할 사항은 이렇습니다.
- 기획설계(사업성 검토·매스 스터디)가 설계비에 포함되어 있는지, 아니면 별도 용역인지
- 건축허가 신청 및 보완 대응이 포함되어 있는지
- 실시설계에 구조·설비·토목 분야가 포함되는지, 아니면 외주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지
- 감리 업무의 경우 현장 방문 횟수와 보고 방식이 명시되어 있는지
업무 범위가 불분명하면 “이 부분은 계약 범위 밖입니다”라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될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설계 일체”처럼 포괄적으로만 표현된 경우, 구체적인 항목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별첨에 기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설계비 지급 조건과 추가 용역비 발생 조건
설계비는 보통 여러 단계로 나눠 지급합니다. 일반적인 구조는 계약 시 착수금, 인허가 취득 후 중도금, 실시도면 납품 후 잔금으로 나뉩니다. 이 자체는 합리적인 방식이지만, 계약서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각 지급 기준의 정확한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인허가 완료 후”라는 표현에서 ‘완료’가 허가 접수인지, 허가 취득인지에 따라 지급 시점이 수개월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각 지급 단계의 트리거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추가 용역비가 발생하는 조건도 미리 파악해 두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 건축주의 요청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 (계약서에 무상 변경 횟수가 명시되는 경우도 있음)
- 지자체 요구에 따른 보완 작업이 반복되는 경우 (단, 설계자 귀책이 아닌 행정 사유라면 추가 비용 협의 필요)
- 당초 계획에 없던 분야가 추가되는 경우 (예: 소방설비, 조경, 토목)
- 착공 후 건축주 요청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경우
“추가 비용이 얼마일 때 발생하는가”를 서면으로 합의해 두면 공사 도중의 갈등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 조항: 도면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나요?
많은 건축주가 간과하는 부분입니다. 건축설계도서는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원칙적으로 저작권은 도면을 작성한 설계자에게 귀속됩니다. 건축주는 해당 건물을 짓기 위해 도면을 사용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이지, 도면 자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실질적인 문제가 되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약 중도 해지 시: 이미 납품된 도면을 다른 건축사사무소에 가져가 수정 의뢰가 가능한지 여부가 분쟁 소지가 됩니다.
마케팅 활용 시: 분양 자료나 SNS에 도면 또는 3D 이미지를 사용할 경우 별도 허락이 필요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유사 설계 의뢰 시: 완성된 건물의 도면을 참고로 다른 대지에 유사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도 조항에 영향을 받습니다.
도면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싶다면 계약서에 저작재산권의 이용 허락 범위를 구체적으로 협의해 포함할 수 있습니다. 계약 전에 이 부분을 명확히 하면 나중에 불필요한 갈등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계약 해지 조항과 중도 해지 시 정산 기준
공사 계획이 바뀌거나 사업을 중단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해지 조항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건축주가 중도 해지할 경우: 이미 수행된 업무 비율에 따라 설계비를 정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실시설계 50% 진행된 시점에서 해지하면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가”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지 확인하십시오. 위약금 조항이 별도로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설계자 귀책으로 해지할 경우: 납부한 비용의 반환 범위와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조항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인허가 지연 처리: 지자체의 행정 처리 지연이나 예상치 못한 조건부 허가가 발생했을 때, 이것이 설계자 귀책으로 처리되는지 아닌지를 계약서에 명확히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 표준 설계 계약서 양식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계약서 검토 시 참고 기준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표준 계약서에서 수정되거나 삭제된 조항이 있다면 그 의미를 반드시 확인하고 진행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설계 계약 전 어떤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지, 계약서의 특정 조항이 일반적인 수준인지 궁금하다면 상담을 통해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